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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er's Original/Otter's Interview

사유(思惟)하는 뮤지션 ‘현구’ 씨의 철학적 음악 유랑기

by 수달지기 2021. 4. 12.

* 본 인터뷰는 3월 2일에 진행되었으며, 《현구》의 싱글은 3월 29일에 발매되었습니다. 이 점 참고하여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대프리카 시동을 부릉부릉 걸고 있는 날씨네요. 

여러분 잘 지내셨나요?
오랜만에 새로운 창작소식을 들고 온 오터스맵 수달입니다. 

정말이지 한국인을 먹기 좋은 명태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이 죽일놈의 날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추워서 인터뷰이들을 추위에 덜덜 떨게 하면서 인터뷰 했었는데, 
어느새 더워서 반팔을 꺼내 입을까 말까 고민하게 만들고야 마네요.

오늘 만나볼 인터뷰이의 주인공은 《현구》씨예요. 

이미 싱글 앨범이 발매 되었기 때문에 들어 볼 분들은 다 들어 보셨겠지만, 
「비센테 아미고」를 들으면서 인터뷰를 보시면 현구 씨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들을
조금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살면서 이렇게 사유(思惟)하는 아티스트를 만나본게 손에 꼽히는 것 같아요.
모든 아티스들이 각자 고유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지만, 어린 나이(?)에 이런 뚜렷한 에티튜드는 정말 처음이에요.
궁금하시죠?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현구 씨의 철학적 음악 유랑기를 만나러 가보아요. 

Paly를 클릭하시면 들으실 수 있어요. 음원수익은 아티스트에게 전달 됩니다. :-)

《현구》의 첫 싱글 「Vincete Amigo」 앨범 자켓


Q. 첫 싱글 앨범 「Vincente Amigo」를 준비 중인 현구 씨 안녕하세요. 앨범 소개와 함께 본인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현구 비센테 아미고라는 곡은 연인과 사랑을 하던지 친구끼리,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던지 설레임에 대한 감정이나 느낌을 담고 싶었어요. 가사도 어떻게 보면 유치할 수 있는데... 후렴구에 사랑이여 도와줘요도 한국어로는 흔히 쓰이지 않는 표현이지만 사랑이여-’라고 인칭화 시키는 것이 영어나 외국어에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비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가사의 화자가) 절실한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무언가에게 비는 그런 내용을 담은 거예요. 중의적인 표현이지만 어떤 대상에게 내 사랑이여로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Baby 같이. 그런 것과 비슷해요. 그래서 중의적인 표현을 하고 싶었어요.

수달 어떤 확정적인 의미가 아니고,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그런 의미인거죠?

현구 , 어떤 두 사람에 대해서- 듣는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서요. 열어놨다고 하기보다 듣는 대상에 따라 다를 거 같아요.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 곡으로 앨범을 발매할 줄은 몰랐어요. ‘현구라는 이름을 알릴 때 이 곡이 명함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선택하게 되었어요.

수달 앨범은 언제 발매가 되나요?

현구 앨범은 329일에 발매가 돼요. 그날이 특별한 날은 아니고요. 앨범을 유통 시켜 줄 유통사 일정에 따라서 그날로 진행하게 됐어요.

Q. 맨 처음 기타 소리를 듣고 미국의 포크송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거침없이-'라는 부분을 듣고 '아, 락인가?'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부분에는 플룻 소리도 들리고요. 다채로운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전문적인 음악적 식견은 없지만 서정적인 것 같은데 발성은 풍부하고, 악기의 장점을 활용하는 느낌이라서 되게 좋더라구요. 이 곡은 어떻게 탄생 되었나요?

현구 비센테 아미고라는 곡은 후렴이 반복돼요. 제 다른 곡들 대부분이 그렇고요. 저는 단순하게 직관적으로 직설적이고 함축적인 가사를 많이 쓰는 편이에요. 가사에 대한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인데 6, 70년대의 옛날 것(스타일)을 고수하는 그런 모습으로는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기타랑 노래로만 해보자, 그렇게 곡을 써보자로 시작했고, 그 시작이 처음과 똑같거든요. 저한텐 기타 하나와 목소리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편곡에 의미를 뒀어요. 이런 의미도 있어요. 시도. 음악을 정답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도화지에 그림 그리듯이 그냥 해봤어요.
플롯이란 악기는 처음 이 곡을 쓸 때 아, 플룻이 들어가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무드나 분위기가 전달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음악은 포크로 시작하고, 관악기가 나오고, (set)도 일반적인 드럼이 아니고 브러쉬가 나오는 거죠. 톤이 가벼운 걸 쓰거든요. (제 능력의 범위에서) 할 수 있는 게 이게 다라서 한거지 의도한 건 없어요. (웃음)

Q. 가사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나와요. 그런데 곡 제목은 「비센테 아미고」잖아요. 아미고는 '친구'라는 의미의 스페인어인데 이게 그냥 친구 사이의 사랑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의미의 가사인가요?

거침없이 다가오는 숨을 가쁘게 해.
말한 적 없던 이야기에 설레발을 보내.
방황하던 기색에는 마주치지 못해.
어떤 맘에 그랬던 걸까요. 우리에 운명이 뭘까요?

사랑이여 도와줘요. 그대 와요 머물러요.
사랑이여 말해줘요. 그대 와요 영원히요.

고장난 시곌 차고 무심하게 널 기다려.
언젠가 얘기할 비밀스런 우리 대화.
언제나 날 보며 눈웃음을 지어 보인 너.
어떤 맘에 그랬던 걸까요. 우리에 운명이 뭘까요?

사랑이여 도와줘요. 그대와요 머물러요.
사랑이여 말해줘요. 그대 와요. 영원히요.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이여 도와줘요. 그대 와요 머물러요.
사랑이여 말해줘요. 그대 와요. 영원히요.

현구  「비센테 아미고는 원래 스페인의 기타리스트 이름이에요. 그 사람에 대한 것을 참고하다가 , 이거 예쁜데?’ 하고 곡 제목으로 짓게 됐어요. 마침 아미고라는 뜻이 친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이 곡 자체가 이제 어떤 남자 여자가 들었을 때, 이게 (둘이) 잘 됐다는 거야. 안 됐다는 거야? (웃음)
그런데 둘이 친구로 남았다는 게 더 잘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비센테 아미고라고 제목을 지었어요. 비센테라는 이름은 김씨, 박씨, 이씨 같은 아주 흔히 쓰는 성씨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비센테 아미고라는 타이포가 예쁘더라고요. 발음도 예쁘고, 보이는 글씨체도 예뻐서 그렇게 짓게 됐습니다.

그래서 굳이 비센테 아미고를 번역 하자면 남녀 간의 김씨 친구, 즉 영어의 dude, hey guys, my boys, my friend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느낌인데 아, 수달의 언어적 한계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여러분,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죠? 마치 영화 《러브 로지》같은 관계인거죠. 걱정마요, 영화는 해피엔딩이니까. ⓒ 러브 로지


Q. 제가 듣기로는 현구 씨가 꽤 활동을 오래 해왔다고 들었거든요.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현구 성격이 활발하지 못해서 공격적으로 오디션을 보거나 하진 못했어요. 혼자 방에서만 음악을 하다가 소개로 너 이거 한번 해 볼래?’ 했던 게 클럽 헤비에서 20174월에 처음으로 한 공연이었어요. 헤비에 어쿠스틱 공연이 있거든요. 그때부터 꾸준히 라이브 클럽 데이 어쿠스틱 버전으로 참여하게 되고 그러다 행사도 들어와서 하고 그렇게 시작을 했어요.

늘 음악하는 꿈이 었던 《현구》씨. 실물이 더 훈훈하십니다. ⓒ 현구

 수달 비전공자가 음악을 하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이렇게 곡 작업도 하시고, 앨범을 내는 뮤지션이 됐어요. 아, 내가 음악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현구 사실 부끄럽지만 전 늘 꿈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릴 때는 더 내성적이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장래 희망을 적잖아요. 그러면 이렇게 팔을 가리고 가수라고 적었어요. 그런데 당시 아이돌도 저한텐 가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비웃었어요. ‘네가?’ 이렇게요. 근데 그때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그거밖에 없었어요. 중학교 때도 다른 아이들처럼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고요.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는 게 할 수 있는 다였죠. 락이나 당시에 유행하던 음악들을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다 이런 비애가 있겠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웠어요.

고등학교를 구미로 가게 됐어요. 그런데 학교에 관악부가 있는 거예요. 선배가 와서 너 악기 이거 해 볼래?’라고 해서 튜바라는 관악기, 금관악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리고 튜바를 하게 되면서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해나 소리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된거죠. 음표도 하나 모르는 상태에서 3년 동안 한 경험은 제가 음악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앨범을 만들 때도 여기에 트럼펫이랑 하면 되겠다, 플롯이랑 이렇게 해야지. 클라리넷이랑 해야지, 여기는 첼로와 비올라, 바이올린을 넣어야지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서 3년간 돈을 모았고, 23살에 퇴사하고 나서 음악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일 먼저 했던게 독서를 하는 거였어요. 제가 원래 천주교인데 경서쪽의 책들을 많이 봤어요. 개신교에 관한 것들도 많이 봤고요. 신학적인 것들이요.

진짜 자연은 누가 창조했을까요? 수달의 오랜 궁금증이기도 해요. ⓒ Pixabay

저는 오랫동안 자연이나 만물들을 보면 감동이 되기도 하고, 자연이란 존재가 너무 대단하다라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자연은 우리한테 생색을 내거나 하지도 않고요. 이런 걸 창조한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생겼어요.
(조심스럽게) , 근데 저 이런 얘길 해도 되나요?

수달 네 괜찮아요. (웃음)

현구 (조근조근) 저 아무한테도 이런 얘길... 안하거든요. 그런데 인터뷰를 하니까 하게 되네요. 그냥 나 대충 가수야이렇게 이야기 하는게 다인데...

수달 아티스트를 이루는 철학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시를 보러 가도 작품을 보면 작가의 철학이 느껴지잖아요.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생각이나 철학들이 작품에 다 반영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현구 , 너무 진부하게 이야기 한걸까봐...

수달 아니에요, 괜찮아요.

현구 .. 그렇게 한 2년 정도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스물다섯쯤에 내가 (작곡을 하기 위한) 악기를 하나 해야겠다고 한계를 느낀 거예요. 제가 그렇게 노래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그때 내가 의지했던 게 MP3 하나인데, 아이리버 256MB에 카메라 30만 화소 달린 그거 하나를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썼거든요. MP3에 든 플레이 리스트 듣고 그걸 따라 하고 그 노래를 흥얼흥얼 거렸어요. 그러다 곡을 한 번 써 보면 어떨까? 라고 생각을 하게 됐고요.
20166월에 첫 곡을 썼어요. 20174월에 첫 공연을 하게 됐으니까 곡을 쓴지 얼마 안 돼서 공연하게 됐죠. 그래서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우연히 썼더니 공연을 하게 되었네요.

다들 기억 하나요? 국민 MP3, IMP-1095 ⓒ 아이리버


Q. 요즘 트렌드와 상관없이 포크, 블루스 같은 스타일의 작업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장르를 좋아하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을까요?

현구 사실은 누구나 동경하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기타를 막 시작했을 때 그 당시 대구가 한창 버스킹이 성행하던 때였어요. 그래서 시내를 갔는데, 어떤 두 사람이 버스킹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나도 기타가 있는데 저런 모습으로 하면 너무 멋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형한테 번호를 바로 물어봤죠. 그렇게 모르는 것도 그 형한테 물어보고, 연락을 주고받다가 알려줬던 게 데미안 라이스였어요.

쌀 아저씨, 음유시인 데미안 라이스 ⓒ 데미안 라이스

그렇게 그 사람의 노래를 듣다가 마침 데미안 라이스가 내한한 거예요. , 이건 꼭 봐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섯 명 다 같이 보러 갔는데 그때 제가 느꼈던 그 기분을 표현을 하자면 (데미안 라이스는) 가수가 아니고요! 예술가 그 자체였고 그냥 그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그 수단이 악기인 거고, 부족하지만 멜로디 쓰는 거고, 거기에 가사 붙이는 게 된 거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걸 음악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이야기 하는 거죠. 나는 그런 사람인거고요. 가수가 이래야 된다 그런 건 없는데, 그때 좀 많이 느낀 것 같아요. 그래서 싱어송라이터가 되어야지 라는 목표로 좁혀졌던 것 같아요.

내가 하나 할 수 있는 건 기타밖에 없고, 목소리밖에 없고.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음악을 해 보자. 그렇게 했더니 그게 더 잘 맞았어요.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했기 때문에, 그렇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대중적인 걸 원하기 때문에 시간이 바뀌면서 좀 바뀌었던 것 같아요.

전 늘 부끄러웠어요. 제가 소심하고, 남들한테 보여주고자 하는 음악을 한 게 아니었어요. 그냥 내가 만족해서 늘 한 거였기 때문에... 그래서 곡도 늦게 낸 거예요. 내가 만족해버리니까 남들에게 왜 안 들려줘? 같은 고민을 늦게 한 거죠. 근데 먹고사는 문제나 내가 진지하게 음악을 생각을 하게 된 건 이 앨범 때문인 것 같아요. 이제 시작이에요. 저도 너무 부족한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포크를 선택하게 됐어요. 통찰력이라던지, 직관력이라던지 그런게 사람마다 있잖아요. 제가 데미안 라이스를 처음 느꼈을 때 그런 게 느껴졌어요. 이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눈을 멜로디와 글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구나. 그거를 남들에게 전달하고 있는데 굉장히 함축적이고, 비유적이고, 시적인 표현을 통해서 남들에게 다가가는 의미가 다 다른 거예요. 그게 부정적이지 않고, 충분히 본능적이며, 내가 생각하는 일반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들을 선을 넘고 있고, 되게 그런 것들을 느끼게 해주고 있는 거예요. 근데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은 못하겠지만 그런걸 해보고 싶었어요. 가사 같은 것도 많은 사람들이 이 가사를 보고, 자기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써야겠다. 그래서 발라드 같은 곡도 있지만요, 가사들을 대부분 이치적으로 쓴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에게든 다가갈 수 있고 그것이 어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더라- 이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빈센트 아미고는 굉장히 라이트한 거예요. 저한테는 없는 굉장히 대중적인 곡이에요. (웃음)

수달 데미안 라이스의 어떤 노래를 좋아하세요?

현구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건데 영화 OST였던 The Blower’s Daughter라는 곡을 제일 좋아해요. 데미안 라이스의 가사 같은 것들 구글링 해서 찾아보고, 영상도 안 본 게 없어요. 그러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죠. 음악에 대한 느낌같은 것들이요.

데미안 라이스가 영국 사람이잖아요. 정확하게는 아일랜드 사람인데, 제 생각에는 일제강점기 식민지로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한이 있고,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도 사실은 식민지였잖아요. (비슷한 식민지로서) 억압 받았고, 통제 받을 수밖에 없었던 그런 나라였죠. 지역적 특성으로 그런 음악들도 나타난다고 봤을 때, 데미안 라이스의 음악은 그런 한이 담긴 음악이었어요. 역사적으로 봤을 때, 그 사람의 배경을 봤을 때. 그래서 나도 그러한 것을 담았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줄 수 있는 멜로디나 분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내가 음악을 한다면 저 사람을 롤모델로 해도 되겠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비센테 아미고에 그렇게 한이 담겼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수달 앞으로 작업하는 것들에는 차츰차츰 그런 생각들이 담기겠죠.

현구 , 맞아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Q.
공연도 여러 번 기획 하시고, 버스킹도 하시잖아요. 말이 기획이고 버스킹이지 사실 혼자서 그런 것들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밴드들은 팀이니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힘도 내고, 서로 으쌰으쌰도 하는데 그런 점에서 1인은 많은 용기도 필요 할 것 같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액션을 취하게 만드는 열정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현구 일단은 애초에 그런 기회들이 저한텐 없었고, 그래서 스스로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런 기회들이 있었다면 아마도 스스로 기획하는 일들이 덜 했겠죠. 그래서 공연을 하는데 아무래도 제가 유명한 사람이 아니니까 보는 사람은 제가 어떤 음악을 하는지도 알 수 있는 게 없고, 제가 앨범이 있어서 곡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에 대해 잘 모를 수밖에 없죠.

수달 대구 인디씬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현구 아티스트들이나 가수들은, 포장을 열어 주기 위한, 포장지가 중요하잖아요. 근데 선물을 뜯어보기 위한 포장 같은 게 너무 안 되어 있는 거예요. 이런 음악 비즈니스 산업이나, 지역에서 봤을 때 인디라고 하는 어떤 (활동들을) 해오는 것들을 봤을 때, 형식적이고요. 그런 것들이 대구가 250만명, 경북까지 하면 4~500만명이 대구 중심가를 올 텐데 그 사람들에게 그럴만한 마음도 안 주는 거예요. 그건 뭔가 인프라가 잘못되어 있다. 뭔가가 지금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잘못되어 있다고 비판 하는게 아니라 거기에 대한 고민을 늘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조금은 다가갈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지금 일 하는게, 사진이랑 영상 일을 하거든요. 어떻게든 있어 보이게 보여져야 되고, 뭔가 궁금하게 보여져야 되고, 가지고 싶게 보여져야 된다. 그게 초점인 거 같아요.
대구에 있는 음악 다 좋거든요. 음악 하는 분들이 너무 좋아요. 많고, 잘하고, 그만큼 뜨거워진 지역이거든요. 저도 대구에 와, 이런 사람이 있다니 생각하면 좋으니까요. 근데, 그걸 홍보하는데, 보여지는데, 포장을 같이 뜯어보자고 하는 문화 자체를 만드는 거 자체가 없어요. 그런 캠페인이라고 해야 하나, 운동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유기적인게 있어줘야, 결과적으로 포장을 뜯었을 때 같이 본다는 거죠.

수달 대구에 좋은 곡도 많고, 뮤지션들도 많고 그런데 뭔가 부족하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거기에 대해서 더 덧붙이거나 인디씬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지신 게 있나요?

현구 말 그대로 인디니까 다 잘해야 되는 것 같아요. 제작하는 것도 잘해야 하고, 본격적으로 다들 잘 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의심은 없고, 아무래도 공연장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고민을 해야 하는게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그분들도 다 고민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유입 시키나, 사람들이 우리 저기 가자, 금요일 밤 되면 저기 가자이렇게 되어야 하잖아요. 그런걸 어떻게 하나하는 고민들? 그런데 지금은 시대적으로 좀 안 맞는것도 있어요.

언택트 시대이기도 하고,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서비스로 즐길 것들이 너무 많아요. 지역적이고 인디적인 것들은 어떻게 보면 너무 스펙트럼이 너무 좁은 그런 거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걸 즐기기에는. 그것도 용기거든요. 그거를 즐기기 위한 것도 용기기 때문에 사실은 좀 모순적인 게 있어요. 그걸 바란다는 것 자체가. 그냥 사람이 잘 만들어야 되고, 어찌보면 이 시대의 유행이나 트렌드를 흐름들을 잘 알아서 그걸 따라서 잘 만들어야 하는 거죠. 상품, 공연을 만든다던지, 영상을 만든다던지, 전시를 한다던지. 일반적으로 해왔던 방법들을 고수하는 게 아니라 지금은 좀 새롭게 해야 한다, 음악을 콜라보 해야 되고, 소비하게 만들어야 되고 그런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하려고 해요.


7.
이제 코로나19로 인해서 비대면 활동들이 되게 두드려지게 되었고, 말씀하신 거처럼, 언택트 시대가 되면서 기존의 유튜브나 다른 매체들이 홍보 콘텐츠로서 역할만 했다면 이제는 팬들이랑 직접 만나는 수단으로 발전됐잖아요. 실연이 중심인 뮤지션들이나 아티스트들한테는 그게 되게 충격적인 상황이었을 거 같은데, 현구씨한테는 어떤 의미가 됐을까요?

현구 제가 2019부터 공연을 안 했어요. 노래로 돈을 버는 일이 아니면 없었거든요. 언택트가 되면서 들었던 생각이 뭐냐면. 음악 하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힘들었을 거예요. 상시적으로 하는 공연과 행사가 있으니까 공연을 볼 사람이 없게되고요. 그러면서 나 이제 뭐 해야 되지?’ 같은 생각이 들게 되고요.

그때, 많은 분들이 저와 같지 않았을까요? 뭘 어떻게 해야 되지? 뭐부터 해야 되지? 그래서 고민을 했던 게, 그래 나만 못 사는게 아니잖아. 인디에 대한 고민, 포장(마케팅)에 대한 고민, 그런 소모적인 공연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그거를 스스로 독립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영상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영상을 제작 하는 일을 배우게 되었어요.

음악도 사실은 배우는 과정이고, 언택트 흐름에 맞게 준비 하는 사람은 그거를 잘 하게 될 것 같아요. 근데 그런 것도 있거든요. 어렸을 때 추억을 가지고, 그 꿈에 대한 동경이나 무대 위에서 막 뛰고 음악 하는 사람이 있을 거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그런 음악을 잘 지켜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든 지금은 언택트지만 다시 돌아올 거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거나 보고 싶거나 전시나 공연이나 이런 게 아닐까 그 자리를 잘 지켜 주면 좋겠어요. 그게 필요 없다가 아니라 함께 한 무대를 만들고 숨을 쉬고, 또 어린 친구들에게 꿈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잘 지켜주고, 그래도 나는 내가 하고 있는게 최선인 것 같아요.


Q.
예전 인터뷰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그리고 음악가로서 살아가려고 한다’고 말씀 하신 걸 읽었어요. 대중성을 쫓지 않겠다고 읽히던데, 오늘은 또 대중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신 거 같아요. 그 생각에 대해서 바뀌거나, 현구 씨에게 있어서 뮤지션은 어떤 의미인가요?

현구 그때는 대중성이라는 걸 몰랐던 것 같아요. 대중음악이 가진 게 과연 그 가사와 멜로디와 화성과 리듬만이 대중음악을 이루는가?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대중적이다라는게 눈으로 보이는 시각적인 것, 그리고 그 흐름에 맞대응 하는 어떤 액션이나 전체적인 움직임, 분위기 그런 캠페인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겠고요. 모든 게 사실 대중적이고 복합적이더라고요. 전 대중적이라는 단어를 몰랐던 거예요.

어렸을 때는 더 방구석에서 하고 싶었던 걸 할 수 있었던 거 같기도 해요. 지금은 내가 충분히 대중적일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 이유는 곡을 대중적으로 쓰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대중적으로 쓰지 못했고, 지금은 대중적으로 쓸 수 있다라고도 봐줄 수 있겠네요. 나는 개인적인걸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원해! (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굉장히 모순적이었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고 하니까 조금 바뀐 거 같아요.

수달 성장한거죠.

현구 , 몰랐었던 거 같아요. 그 당시에는.

수달 제가 봤던 인터뷰는 2018년도 인터뷰였던 거 같아요. 이제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까 거기에 대한 아티스트의 생각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몰랐다기 보다는 성장하고 변화 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현구 , 변화했어요.

Q. 음악 작업은 주로 어떻게 하세요? 영감은 어디에서 받으시나요?

현구 영감을 받는 방법은 아무래도 정말 다양한데, 어느 순간부터 사랑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거 같아요. 카테고리가 사랑인거죠. 왜냐하면 사랑만큼 대중적인 주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일 수도 있고요. 동물 간의, 반려 가족에 대한 사랑도 되고요, 그리고 자연에 대한 사랑도 되고요.

새가 새집이 있는데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다 줘서 새끼한테 줘요. 그런 과정을 저기 침산동 어떤 큰 나무에 있어요. 그런 걸 봐도, 생각이 있는 동물이 아닌데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닌데도 그런 걸 보고 느낄 수 있잖아요. 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가르칠 거니까요. 그래서 사랑만큼 대중적인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달 그러면 그런 영감들을 사랑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주로 받으시고, 그 영감 받은 내용들을 정리해서 곡 작업을 하나요?

현구 보통 기타를 잡아요. 저는 요즘에는 가사를 쓰는데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곡이 만들어진 건 꽤 있어요. 기타만 잡으면 멜로디까지 다 있는 곡들이 여섯 일곱 개가 있거든요. 그것들 안에 그 곡이 멜로디가 가지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거기에 오늘날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적거든요. 서른 살이 2021년을 살아가는. 서른 살이 이 시대와 세상을 바라보는 이런 것들을 적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에는 곡을 잘 못 쓰고 있어요. 고민이 많아졌나봐요. 세상을 판단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어려워요. 어렵다고 생각이 돼요. 옛날에는 쉬워서 적었나? 그건 모르겠는데. 그냥 짧은 말이라도 마침표를 찍는다는 게 옛날에는 쉬웠던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더 어려워지는 거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럴 거 같고요.

보통 저는, 당황하실 수 있는데 데모가 없어요. 곡이 한 서른 곡 정도가 있는데, 당장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데모가 있는 게 두 개 밖에 없어요. 그만큼 게을러요. 30곡 다 외우고 있어요.

수달 게으른 천재군요?

현구 이게... 잘 못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거 있잖아요. 내가 이걸 못하니까 이렇게라도 해야지 이렇게 된 거죠. 못하니까 외울 수밖에 없는 거죠.


Q.
말씀하셨던 작업 계획 말고도, 혹은 앞으로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나 아니면 작업이 있다면?

현구 프로젝트, 작업. 사실은 어떤 거든 환영이에요. 이 인터뷰를 보고 연락을 주시는 분들도 있을 거니까. 어떤 것이든 다 해보고 싶어요. 음악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일이라면요. 근데 음악을 제작하는 일이 그게 비즈니스 적으로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제 음악으로 뭘 이뤄봐야겠다, 성취해야겠다 이런 욕심이 없어요. 그냥 음악은 평생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내가 일기장 하나씩 잘 만들어서 내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게 사랑 받아야 되고, 성공해야 되고. 근데 최소한은 해야 된다 이거죠. 이제 뭐 포장(마케팅)을 하는 일이라든지. 그런걸하되 이걸로 내가 부귀영화를 누린다든지 그런 거는- 일단 20대는 그런 욕심이 있었거든요. 혹시나 내가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30대가 된 지금에 와서는 이렇게 사는 거겠구나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잘 하나씩 하나씩 잘 만들어야겠다. 조금은 열정이나 열망이 조금은 가라앉은 거 같은 느낌이에요.

수달 가라앉은 느낌이에요?

현구 옛날에는 와-! 이런게 있었거든요. 그래서 일 년에 공연을 그렇게 기획해서 공연하는 거예요. 아무도, 저 사람은 뭐 저렇게 하지 하는데도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수달 근데 그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현구 씨가 있는 게 아닐까요?

현구 , 맞아요. 그게 그런 거 있잖아요. 열도, 보통 우리가 겨울에 추우면 따뜻한 거 같이 키고 싶거나 같이 하고 싶잖아요. 그런데 따뜻한 불을 켜놓고 불 속에다가 손을 넣지 않잖아요. 멀리 이렇게 떨어져서 있잖아요. 옛날에는 그런 불과 같은 중심재 같은 사람이였다면. 지금은 그냥 이제, 그게 안에 없는 게 아니에요. 그 불이. 이제는 평생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으니까. 추우면 들으러 가는 거죠. 이런 음악도 있더라.

수달 팔팔 끓는 불보다 이제 은근한 불이 좋은 거죠. 아까 오케스트라를 이해하게 된 것처럼 뭐든 경험하면서 자꾸 성장하는거죠. 오케스트라적인 작업을 다른 밴드와 해볼 생각은 없으세요? 이내꿈이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 이내꿈 인터뷰 참고.

현구 오케스트라가 아니고 관악대예요.(웃음) 그때 경험이 오케스트라적인 접근을 이해하게 해준거죠. 관악부를 3년 동안 하면서 각 악기들의 특징들을 알게 된 게 가장 큰 장점인 거 같아요. 엄청난 재산이 되었어요. 그게 나중에 제작을 해 보면서 느낀 거예요. 그냥 이거는 내가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거든요. 그래서 오케스트라 작업을 한 다음에도 제가 편곡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그런 실력은 없기 때문에. 꼭 안 된다라고 부정적인 거는 아닌데 제가 만족하고 듣기 힘들지 않을까요? 그렇게 대답을 할 수 있겠네요. 가르쳐줄 순 있겠죠. (그 밴드의 음악을) 듣고 여기에 이거(악기) 넣으면 좋겠는데? 라고 할 순 있겠죠. 잠깐 이글루라는 밴드랑 같이 공연을 했을 때 이내꿈 음악을 들어 봤거든요. 들어봤을 때, 이런 음악을 하구나, 그러면 현악기나 그런 것들이 필요할 수 있겠다. 보통 오케스트라라고 하면 현악기를 생각하기 때문에 목관악기나 금관악기를 잘 생각하지 않거든요. 보통은 현악기를 생각해요. 현악기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저는 이제 본 게 목관악기나 금관악기다 보니까 그쪽을 음악에 콜라보 해보고 싶은 게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유명한 트럼펫터와 협연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 곡도 그렇고 다 목관악기나 그런 것들이 섞일 거예요. 곡을 다 그렇게 만들 거예요.

수달 다음 앨범에서요?

현구 네네. 싱글에서도 그렇고요.

수달 아니 이래서 배워놓으면 다 써먹을 데가 있다는 거예요. 재밌을 거 같아요. 그런 것들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현구 재밌는데, 재밌었다. 난 누가 해줬으면 좋겠어요. (웃음) 돈만 많으면.

수달 가령 제가 집에서 배우자 밥을 해주잖아요? 저는 누가 해주는 밥이 계속 먹고 싶은 거예요. 그런 느낌일거 같아요.

현구 , 제가 다 알려줄 수 있거든요. 이거는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라 다 할 수 있는데, 그 작업을 내가 이제 해야 된다니까, 곡도 써야 되고, 녹음도 내가 해야 되고. 나는 그냥 내가 머릿속에 있는 거 그냥 이제

수달 끄집어내서 그대로 실현 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현구 돈이 많아야 돼. (웃음)

수달 2021년 현구 씨 목표는 로또 당첨!

현구 . 저 진짜 사실 그게 있어요. 로또 당첨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수달 돈을 어떻게 해서든 많이 벌고 음악은 그걸로 성취를 이루면 되죠.

현구 음악은 다른 거예요. 근데 돈이 있으면 음악을 잘 할 수 있어요. 이게 좀 세속적인가.

수달 세속적인게 어때서요? 현구 씨가 되게 수도자의 마음이 있는 거 같아요. 그쵸? 계속 말씀하시는 거 보면. 뭔가 좀 경건하고 싶고, 이런게 있는 거예요?

혹시 나중에 현구 씨를 카톨릭 수도원에서 만나게 되는거 아닐까?&nbsp;ⓒ GOD


현구 선비가 되고 싶고 이건 아닌데, 어렸을 때, 제가 농담하는 거 되게 좋아하고 장난치는 거 되게 좋아했거든요. 근데 자라면서 저만의 기준이 생긴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교만하지 않아야 한다... 제가 교만스럽게 보일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좀 조심스러워요.
남들에게 판단 받아야 되는 사람이니까 더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 판단하는 건 의도하는 바로 알 수 있거든요. 중요한 건 고민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고민 안 하는 사람들은- 이제 고민 안 하면 안 돼요. 다 해야 돼요. 그렇게 고민 하는 사람이 계속 음악을 하는 거 같아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에는 '얀테라켄(얀테의 법칙)'이 있는데, 자신을 특별하거나 지나치게 뛰어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것으로 보통 사람의 법칙이라고도 불리우기도 한다. 현구 씨는 약간 이런 성향의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 인터뷰이였다.&nbsp;ⓒ 코난 브라이언 쇼


Q. 우리는 현구 씨를 싱글 앨범 말고 앞으로 어떤 경로로 만날 수 있죠?

현구 안 그래도 녹음했다는 소식을 하니까 헤비 사장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제가 헤비 누나한테 약속을 한게 있는데, 누나가 정말 저한테 잘해줬거든요. 이야기 잘 들어주고, 정말 부족하고 못하는 친구를 공연 세워주고, 다 알거든요. 근데 이제 공연을 해달라고 할 때, 누나한테 이야기 했어요. 앨범 내면 공연 하겠다, 미안하다. 나는 지금 이렇게 하면 소모적이고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공연을 하게 된다면, 곡을 내면 하겠다라고 했는데 마침 곡을 녹음했다 하니까 누나가 바로 연락을 줘서 공연 할래?’ 해서 35일에 공연을 해요. 근데 곡이 나오기 전에 공연을 하게 된 거죠.
공연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몇 년간 (공연을) 하지 않았잖아요.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줘야지, 나를 보여주는 시간이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앨범 활동이랄게 크게 있을 것 같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해요. 이제 소모적인 건 하고 싶지가 않아요.

(내 음악을) 알리는 것도 그게 앨범 활동이라면 영상을 만들거나, 기획공연을 한다거나, 앨범이 있으면 이제 인플루언서들이나 카페 공간을 섭외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 보일 수 있는 그런 기획을 한번 하지 않을까한데, 중요한 건 곡을 더 만들어야 돼요. 그래서 앨범은 이게 끝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 올해 목표는 그거거든요. 제작자가 되는 데 있어서 무게를 더 두고 있어요. (콘텐츠를) 더 많이 만들어야 돼요.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사진도 찍어야 하고, 포스터도 만들어야 하고, 기획도 해야 하고, 컨셉도 잡아야 하고, 영상도 만들어야 되고, 연주 연습도 해야 되고요.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에, 제작에 대한 고민. 이런 고민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살면 될 거 같아요. (웃음)

수달 그러면 우리는 현구씨 앨범이 나오면 영상에서 더 자주 만날 수도 있겠네요.

현구 장담은 드릴 수 없어요. 왜냐하면 영상을 만드는 것도 제작에 대한 어려운 게 있거든요. 부담이 돼요. 그걸 약속을 드릴 수 있다는 게 어려울 것 같고. 근데 하나 기획하는 건 있어요.

수달 듣고 싶은 평가나 들었던 평가가 있다면요?

현구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런 건 현구가 할 수 있다. 그게 제가 처음부터 들었던 얘기인 거 같아요.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니는 그냥 니 같다.

수달 그런 나 다움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닐까요?

현구
그래서 사실 그래서 안 놓고 있는 거예요. 못 놓았던 거죠. 제가 다른 일을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았는데, 안되더라고요. 못 놓겠더라고요.

수달 원래 여기 일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현구 그런 고민이 많았던 시간이 있었거든요. 개인적인 고민이지만 그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뭐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고, 옛날에는 그런게 있었는데 제가 대단하지 않은 거 같아요. 그래서 대단한 사람이 된다기보다는 그냥 꾸준하게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 별 욕심이 없어요. 그냥 나를 위해서라도 내가 나를 사랑하면 나를 위해서라도 해야겠다. 시간이 지나서도 다르게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거니까. 나를 위해서라도 차곡차곡.

수달 현구 씨의 음악을 듣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현구 처음 내는 앨범이지만 많이 들어 봐주셨으면 좋겠고요. 이제 시작이에요. 시작이기 때문에 더 노력하고, 더 잘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건 약속 드릴 수 있어요. (웃음)

■ Fin



현구의 신곡들은 멜론, 지니, 벅스, 유튜브 뮤직 등 음악 스트리밍 앱에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현구 인스타그램 가기 >>> instagram.com/_hyungoo/ 

현구 블로그 가기 >>> blog.naver.com/hyun9official

* 가급적 비문을 정리하고, 중간중간 웃음소리, 액션들에 대한 설명은 괄호로 정리하였습니다.
* 질문과 답변의 구분을 위해 인터뷰어의 질문은 색 처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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